Before We Call Them Fans

누군가를 팬이라 부르기 전에

‘You’ll Never Walk Alone’은 1945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Carousel’을 위해 쓴 노래였습니다. 1963년 10월, 리버풀의 밴드 Gerry and the Pacemakers가 이 노래를 다시 불러 영국 차트에 올렸습니다. 리버풀의 홈구장 안필드에서는 경기 전에 그 무렵 인기곡 열 곡을 틀었고, 관중은 새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이 노래는 곧바로 관중석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노래가 인기곡 열 곡에서 빠져 더는 나오지 않자, 팬들은 우리 노래가 어디 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뒤로 이 노래는 안필드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경기가 시작되기 전이면 Gerry Marsden의 목소리가 먼저 흐르고, 관중 전체가 그 뒤를 이어 부릅니다. 크게 이긴 날에는 축배처럼, 힘든 날에는 서로를 붙드는 노래로 함께 부릅니다. 누구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이 노래를 거쳐 간 모든 손이 함께 지은 문화입니다.

왜 리버풀 팬들은 노래를 돌려 달라고 항의했을까요? 누가 부르라고 시킨 노래도, 부른다고 무엇을 얻는 노래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다만 그 노래는 리버풀의 밴드가 부른, 그들 도시의 목소리였습니다. 그 노래를 부르는 동안만큼은 관중석의 낯선 사람들이 모두 한편이 되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함께 부르는 시간이 즐거웠던 것입니다. 문화는 그렇게, 쓸모보다 먼저 오는 순수한 즐거움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축제가 끝난 다음 날 아침, 들판에는 전날 밤 함께 부른 노래의 흔적만 남습니다. 문화는 그렇게 사람을 잇고, 그 시절을 기억으로 남겨 오랜 뒤에도 그때의 나를 다시 만나게 합니다.

한 작품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그 절반은 아직 쓰이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나머지를 채우는 것은 그 작품을 받아 든 사람입니다.

마르셀 뒤샹은 창조 행위가 예술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앞뒤로 무늬를 인쇄한 둥근 판들을 만들었습니다. 그 판은 누군가 축음기 턴테이블에 올려 돌려야만, 무늬가 깊이를 얻어 떠오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판을 올리고 돌리는 사람이 있어야만 작품이 완성되었던 셈입니다. ‘You’ll Never Walk Alone’이라는 노래를 끝내 완성시킨 것도, 안필드의 관중들이 아니었을까요.

좋아하는 것은 어느새 나를 설명하는 말이 됩니다. 우리는 때로 한 노래의 제목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그 노래를 잃을 뻔하면 돌려 달라고 말합니다. 팬이라는 이름은 그때 붙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함께 지켜 낸 것이 사람들을 묶고, 같은 시절을 지나온 이들은 노래 한 소절로 서로를 알아봅니다. 따라 부르고, 다시 부르고, 다음 사람에게 건네며 그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갑니다. 자기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 사람을 만나 함께 완성될 때, 그 곁에 모인 사람들이 팬덤이 됩니다. 팬덤은 문화가 만든 공동체이고, 작품과 사람이 오래 공명한 흔적입니다.

우리는 팬을 바라보기 전에, 문화의 본질적인 의미를 먼저 되새기고자 합니다. 억지스러운 트렌드가 아니라 진짜 즐거움이 무엇인지 순수함을 잃지 않고 탐구하며, 낯선 사람들이 함께 부르고 지켜 내다 끝내 ‘우리 노래’라 부르게 될 작품을 추구합니다.

팬이라는 이름은 우리가 붙이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함께 지은 사람들이 스스로 얻는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시선은 언제나 그 이름 이전의 한 사람, 그리고 그들과 함께 지어 갈 문화에 머물고자 합니다.

2026.10